Directed by Gereon Wetzel
Cast: Ferran Adrià, Oriol Castro

지난 십 년 넘게 미슐랭 스타 세 개를 놓쳐 본 적 없고, 거기다 World's best restaurant 리스트에서 항상 1위 자리를 고수했던, 하지만 지난 7월 30일부로 영원히 문을 닫은 스페인 코스타 브라바의 로제에 있는 El Bulli 레스토랑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문을 닫기로 결정하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했지 싶은데 재정난이라던가 그런 제반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음식을 창조하기까지의 과정을 주욱 촬영했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했으므로 만족.

우선 내가 알고 있는  El Bulli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4월부터 일년에 반만 문을 열고 나머지 반은 문을 닫는다. 반 년 동안 세계의 음식을 연구하고 음식을 창조한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다큐를 보니 아주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예약은 필수. 예약없으면 자리가 비어도 못 앉힌다고 다큐에도 잠깐 언급됨. 예약 오픈하는 순간 빛의 속도로 마감된다. 
작년에 코스타브라바 갔을때 혹시나 가볼수 있나 싶어서 사이트 찾아봤지만 그런 행운이 있을수가 없지. ^^;
손님은 하루에 50명만 받음. 메뉴는 프리-픽스인데 20~50가지 종류까지. 모두 바이트(한입) 사이즈여서 다 먹을 수 있을듯. 가격은 200불대로 메뉴수나 노력에 비해선 저렴한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음식은 스페인의 아방가르드 음식 문화의 붐을 불러일으킨만큼 전부 실험적이고 창조적이다.
쉐프인 페란 아드리아는 분자음식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자세한 건 검색해보시길.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귀찮아서 패스. ^^;

다큐로 들어가면.
다큐는 10월말 엘 불리가 문을 닫는 마지막 서퍼를 준비하는 주방에서 시작한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주방은 주방이 아니라 5성 호텔 로비 수준이다. ^^
한 시즌을 마치면 모든 기구와 짐들을 바리바리 싸서 바르셀로나에 있는 작업실로 옮긴다.
여기서 페란 아드리아와 수석주방장들은 다음 시즌인 4월까지 세계를 돌며 음식을 맛 보고,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실험을 하는 것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은 사진으로만 몇 장 보여주고 영화는 쉐프들이 한 음식으로 끊임없이 실험을 하는 과정을 아주 꾸준하게 다소 지루할 정도로 찬찬히 보여준다.
버섯하나로 스팀하고, 튀기고, 수분 증발시켜보고, 각종 양념 쳐 보고 별별 짓을 다 한다. 주방은 주방이 아니라 실험실이다. 벽에 빡빡하게 붙인 종이며 엄청난 양의 프린터이며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사진들이며...
이 작업은 다음 시즌을 위해 문을 여는 4월까지 계속 되고, 심지어 오픈을 하고도 계속 되는게 달마다 시즌 음식으로 적용시키느라 메뉴가 계속 바뀌는 것 같았다.
이런 긴 과정을 나레이션 없이 쉐프들의 대화,  작업장면 촬영 등의 형태로 시즌 마지막인 10월까지 월별로  계속되는 장면을 꾸준히 보여준다. 마지막은 아름다운 음식 사진들과 함께 엔딩 크레딧.

우선 다큐멘터리는 마음에 들었다. 나레이션도 없고, 인터뷰도 없이 그야말로 과정들만 지루할 정도로 보여주는데서 다큐멘터리 감독의 고집이 느껴졌다.
20년이 넘는 역사에, 스페인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핫하고 주목받는 레스토랑과 스타 쉐프를 두고 할 말도 많고, 보여줄 것도 많았을텐데 어떤 신념으로 음식을 창조해내는지만 흔들리지 않고 초점을 맞춘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과장도 전혀 없다. 페란과 14년을 같이 한 수석 쉐프 오리올은 사소한 일로도 엄청 언성을 높여 싸우고, 음식이 서빙되는 시점까지도 손으로 먹는지 포크를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고, 음식의 이름도 없어서 즉석에서 날조하는 해프닝까지 보여준다.

 
웬만한 실험실 랩을 방불케 하는 기구들을 보니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수십억씩 적자가 났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오너 아드리아는 레스토랑을 닫고 엘 불리 파운데이션을 만들어 실험을 계속할거라고 밝혔다고 한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서 전혀 섭섭하지 않다고.

개인적으로는 다큐를 보고 나니 입맛이 뚝. 전혀 먹고 싶지 않아짐. ㅋㅋㅋㅋ
그냥 토속적인 고유의 맛이 좋소. 난 창조적인 인간이 아니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 5안에 드는, 타임 워너 빌딩에 있는 Per Se는 그래도 언젠가는 (말 그대로 언젠가는....) 한 번 방문해 봐야지 하는 생각은 또 하게 됨. ^^

엘 불리 레스토랑 전경. 풍광이 아름다운 코스타 브라바 지역에 위치. 난 이 지역을 드라이브했지용. 우히히.

주방 안. 첨엔 특별 이벤트로 홀에서 음식준비하나 헷갈렸음~ ㅋㅋㅋ





클립 중 하나. 페란 아드리아가 쉐프들에게 하는 말에 그의 음식철학이 잠깐 나오지요.

EL BULLI: COOKING IN PROGRESS film clip HD by myfilm-gr